모든 게 끔찍한데

가장 끔찍한 게 너라는 사실 때문에

/ 경배, 김소연

 

 

쓰지 못한 기록이 즐비하다. 모아둔 사진은 언제 또 정리하고.

 

잘 지내니 너는. 왜인지 모르게 9월이 왔어. 왜인지도 모르게 네가 갔던 것처럼. 나만 6월에 두고 나만 다정하던 네 곁에 두고 시간은 참 잘 가. 혼자 멀리 가.

 

가끔 궁금하다.

그날 기차가 멈추지 않았다면. 원래대로 30분 더 일찍 출발했다면. 저장해 둔 플레이리스트의 이름을 내가 못 보고, 구경한 전시가 조금 더 별로였다면. 3번 출구에 선 네가 조금 덜 예뻤다면.

 

함께 잠들지 않고, 그 새벽의 네가 울지 않았다면. 네 편지를 받지 않고, 그게 나를 울리지도 않았다면. 그래도 이렇게 보고 싶었을까. 그래도 이렇게 사랑했을까. 사랑까지 했을까 내가.

 

문득 깨달은 건데, 나는 똑똑한 사람은 영 못 되나 봐. 그리울 사람만 그리울 풍경에다 놓고 오면 어쩌자는 걸까 겁도 없이. 얼마나 울려고. 미련은 한 움큼인 주제에 잠자코 잊지도 못할 거면서.

 

너를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. 너는 그 풍경에 없어야 했는데.

 

그렇게나 무서웠는데 그래서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는데 네가 너무 예뻤다. 내가 아는 눈빛이어서 아는 상처여서. 내민 손이 부르터서 젖은 뺨이 안쓰러워서 등허리를 쓸어주고 싶어서.

 

사랑이면 좋을 것 같았어. 실은 너보다도 내가 바랐어. 그래서 그랬어. 사랑하고 싶었어. 사랑까지도 했어.